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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토리

episode5 업무 - 한자리에 안주하는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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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로 고등학교에서 2진급, 

그러니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선수들과 일했다.

 

아직 이름을 알리지 못한 선수들, 

한국에서 프로 진출의 문턱을 넘지 못한 선수들이 내 고객이었다.

 

 

 

태국,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구단과 협상을 시작했다. 

선수들을 한 명, 두 명 보내기 시작했고, 

계약 조건도 파격적으로 좋았다.

 

 

숙소는 물론이고 통역, 운전기사, 심지어 가정부까지 구단에서 제공하게 했다.

연봉 또한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세 배, 많게는 네 열배 이상 높게 책정했다.

 

 

 

선수들 역시 만족스러워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대접을 받고,

한국에서 겪던 선후배의 엄격한 군기 문화도 없었다.

덕분에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진 선수들은 현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구단도 흡족해했고, 선수들의 삶 역시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선수들이 지금의 팀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선수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유럽 3부리그는 물론

 일본, 중국, 미국의 구단들과도 세일즈를 마쳤고, 이적 준비까지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선수들이 떠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들은 이미 너무나 편안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넓은 집, 가정부의 서비스, 운전기사가 있는 생활.

그리고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현지 팬들에게 스타로 대접받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환경에 놓인 선수들은 더 큰 도전을 택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기로 선택했다.

 

나는 여러 차례 설득했다.

 

더 큰 무대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돌리는 건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몇의 소중한 선수들을 떠나보내면서,

나는 빠른 포기를 배우게 되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방향과 그들이 원하는 행복이 다를 수도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이 에이전트 생활 초기에 얻은, 조금은 씁쓸한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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